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야모토 무사시 (문단 편집) == [[오륜서]] == 무사시가 검술가라기보다는 전술가에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무사시가 남긴 병법서 [[오륜서]]는 현대에도 교본으로 통하는 명저이긴 하다. '''"천千일의 연습을 단이라 하고, 만萬일의 연습을 련이라 한다. 이 단련이 있어야 만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문구 등을 보면 현시대에도 배울 만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러나 병법서라고 해서 무사시를 손자([[손무]]), 오자 같은 병법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말하는 병법은 일본에선 군략(軍略)이라고 한다. '군략'이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고 한국과 중국에서도 쓰인 한자어다. 그리고 일본에서 병법兵法이란 통상 무구 즉, 병기를 다루는 기술이다. 오륜서를 살펴보면 무사시는 병법이라는 용어를 이 둘을 포괄하는 의미로써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무사시가 무술가가 아닌 전술가에 가까웠다는 주장은 아예 틀린 것이고, 검술가이면서 전술이나 군략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이 적절하다. 이러한 오류가 생긴 것은 무사시 시대 즉, 에도 [[막부]] 초기의 시대상을 간과한데서 생겨난다. 일본의 병법은 철저히 무사계급에만 한정된 것이며, 개인으로 봐서는 무예가인 사무라이가 전쟁에 임하여서는 중급 내지 상급 지휘자로 전투를 지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개 병기의 운용법인 무예를 넓은 의미를 아울러 병가兵家의 전반을 아울러 생각하여 병법이라 부르게 된 것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볼 때 자연스러운 단어 의미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야모토 무사시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세키가하라 전투를 끝으로 더 이상 대규모의 항쟁 즉, 무사인 병법가가 군대를 지휘하여 싸우는 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고로 전쟁 전반을 아우르던 병법이 이제는 일개 개인의 수신修身의 방도로 전용되는 것이다. 바로 이 고민이 오륜서에 나타난다. 즉,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략인 병법이 어떻게 개인의 단련을 위주로 하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수신서로 귀결되느냐를 보여줌으로써 이제는 전쟁터가 아닌 도장에서 칼을 휘두르는 무사의 신분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